패왕 유비

from 잡동사니 2011.03.09 21:59


다른데 재미삼아 올린건데 여기에도 한번 올려보니다.
 
─ 이 글은 삼국지연의에 근거해서 작성하였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최고의 무장을 뽑으면 가장 먼저 뽑히는 이름이 관우, 장비, 여포다. 그리고 세 명이 한데 모여 싸운 적이 있다는건 흥미롭기 그지없다.

관장, 삼국지 자타공인 최고의 무장들이 합격을 펼치는 건 이 장면이 유일하다. 그런데 유비가 끼어든다. 여포는 도망간다.

간혹 이런 의견이 있다. "괜히 유비가 끼어들어서 관장의 손속만 어지로워졌다. 여포는 더 좋았을것."

정말 이럴까?

유비는 살면서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고 보디가드라 할 수 있는 관장조차 잃어버리고 해맨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귀신같이 살아남았으며 맹호같기로 이름높은 조군의 맹장들과
정병으로 이름 높은 조조의 군대조차 유비를 감히 잡지를 못하였다

유비의 무예는 과연 어느정도 일까?

 

유비가 쓴다고 알려진 자웅일대검이다.


연의에 보면 이 무기가 만들어진 곳은 동네 대장간이다. 그곳에서 청룡 언월도와 장팔사모도 만들어졌고 신병으로 이름이 높다. 설마 동네대장간이 아무곳이나 그렇게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곳이라고 보긴 힘들기에, 자연히 그 대장간의 주인은 무명이지만 신공(神工)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삼형제가 무기를 만든건 돈이 많은게 아니라 장세평과 소쌍이 "님들 황건 잡으세여 ㅋ"하고 돈을 주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펀드매니저라도 고용해서 계획적으로 자금을 운용해야지 무턱대고 쓸 순 없다. 당연히 자신들이 써먹을 무기는 장인에게 미리 이러이러하게 만들어주라고 언질을 했을 것이다.

즉 유비의 무술형태는 쌍검술이다. 여기서부터 기초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1. 이도류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이도류는 일본검술의 용어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이도류라 하지 않고 쌍검술이라고 부른다. 뻥같으면 정의 1790년(정조 14) 이덕무(李德懋)·박제가(朴齊家)·백동수(白東修) 등이 왕명에 따라 편찬한 종합무예서 무예도보통지를 참조하자.

일단 말해줄것은 이도류는 '기예'에 가깝다. 그것도 굉장히 어려운 기예다. 일단 검은 가벼운 물건이 아니다. 두손으로 잡고 부리는것도 힘든데 한 손으로 부리면 원하는 데로 휘두르기 몹시 힘이 들것이다. 그렇다면 방어는? 한손에 방패를 들고 있다면 그것으로 막으면 된다. 두손으로 칼을 잡고 있으면 팔 힘으로 막으면 된다. 그런데 한손에 검을 하나씩 들고 있다면 막기가 굉장히 힘이 든다. 왜냐, 상대는 두손으로 칼을 잡고 내려찍는데 이쪽은 한 손이다. 힘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쌍검을 교차해서 막으면 되지 않느냐고 싶지만, 실제 전승자들의 의견을 찾아본 결과 그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식의 "흘려내서 막는 형태"도 거의 불가능하다.



"비슷한 실력이면 절대로 이도류는 일도류를 이길수 없다"라는 낭설이 있다. 이도류를 사람들이 잘 안쓰는것은 그게 어려워서겠지만 무술에 절대는 없다. 검도계가 워낙 보수적이다 보니 나오는 말이라고 봐야 할것이다. 실제로 검도대회에서 이도류로 우승하는 사례도 있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도류라는게 굉장히 익히기 힘든 고급 무예라는 것이다. 일단 양 손을 자유자재로 놀릴 줄 알아야하고, 한쪽의 움직임에 따라 몸 반대편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전통 쌍검술을 구사할수있는 숙련자는 3명이 안된다고 한다. 이도류도 칼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나오는데 일반적인 대검 + 소검 조합 같은 경우는 서양에서도 그렇게 꽤나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그런데 자웅일대검은 소검도 아니고 양쪽 길이도 똑같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중검 + 중검 이도류라는 이야기인데, 즉 유비가 익힌 무예는 상당한 숙련이 필요한 고난이도의 무예라는 것이다.

의장용, 즉 폼으로 익혔을 수도 있다. 허나 이때 유비는 빈털터리에 한 손이라도 보태야 하는 형편인 만큼 폼을 재고 그럴 시기가 아니다. 자기가 써먹으려고 했으니 검을 주문했고, 당연히 본래 이도류를 익혔으니 쌍검의 형태를 주문한 것이다. 유비는 상당한 수준의 검술가라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상당한 수준의 검술가 = 삼국지 최강의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거기에 대해서는 밑에 더 추가하도록 하겠다. 일단 말하자면, 유비의 쌍검술은 그냥 쌍검술이 아니다.

마상쌍검술이다!


2. 유비의 기마술

놀랍게도 무예도보통지에는 마상쌍검술에 대한 항목도 있다. 참조해보도록하자. 

 


1. 처음에 항우도강세(項羽渡江勢)를 하되 오른손으로 고삐를 잡고 왼손에 두 칼을 잡되 하나는 세우고 하나는 끼고 말을 타고 가며

 

 


2. 손책정강동세(孫策定江東勢)를 하되 오른손으로 즉시 낀 칼로 왼편을 향하여 펼쳐 열고 오른손은 앞을 정하고 왼손은 뒤 를 정하고

 











3. 그대로 한고조환패상세(漢高祖還覇上勢)를 하되 왼쪽 칼을 오른편에 끼고 오른편 칼은 뒤를 향해 적을 치는 자세를 하고

 


4. 운장도패수세(雲長渡覇水勢)를 하되 오른쪽 칼을 왼쪽에 끼고 왼편 칼은 뒤를 향해 적을 치는 자세를 하고

 


5. 비전요두세(飛電繞斗勢)를 하되 왼쪽칼은 오른편으로 휘둘러 몸을 방어하고 오른편 칼은 왼편으로 휘둘러 몸을 방어하고

 


6. 그대로 앞을 향해 한번 쳐라.

 


7. 벽력휘부세(霹靂揮斧勢)를 하되 오른 칼로 왼편을 휘둘러 몸을 방어하고 왼쪽 칼로 오른편으로 휘둘러 몸을 방어하고

 


8. 그대로 앞을 향해 한번 쳐라.

 


9. 왼쪽을 돌아보고 몸을 방어하고 오른편 칼로 왼편으로 휘두르고

 


10. 오른편을 돌아보고 몸을 방어하고 왼쪽 칼을 오른편으로 휘두르기를 세번 하고 항우도강세로써 마치되 만일 말을 돌리면 한고환패상세를 하고 또 운장도패수세를 하되 정수없이 하여 항우도강세로써 마쳐라.


 

혹시 그냥 폼으로 쓴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수가 있다. 허나 조선은 기본적으로 궁시에 있어서는 괴이할 정도로 대단한 나라였지만(기생들도 심심하면 활을 쏘고 다녔다! 이순신 장군이 50발을 쏘면 41발을 명중시켰다는데, 그 시대 기준에선 잘쳐줘야 평균이다) 검술에 있어서는 "저 놈 모반 꾸미는거 아니야?" 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지라, 일본의 검술 유파나 중국의 무림 문파같은 무술 단체가 생겨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술들은 전부 군용 무술이고, 당연히 전쟁에서 써먹을 무술이니 극도로 실전적인 무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써먹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자, 조선시대에 마상쌍검술을 구사한 사람이 있다. 허나 알아두어야 할건, 조선시대의 말의 등자 기술하고 삼국시대의 등자 기술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정도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등자를 이용해서 두 손을 전부 떄고 양 손으로 검술을 쓰는게 가능할 수 있겠지만, 삼국시대엔 그럴 방법이 없다.

 

고구려 때도 말 위에서 양손으로 화살을 쏘지 않았냐 하지만, 잠깐 양 손으로 활을 쏘는것과 전투 내내 말을 잡지 않고 두 손을 바삐 놀리며 싸우는것이 어찌 똑같을 수 있겠는가?

 

유비는 대체 어떻게 말 위에서 쌍검을 놀릴 수 있었을까? 거기에 관해서는 북방 기마민족들이 해답이 된다. 말 위에서 살고 말 위에서 죽는 기마민족들은 허벅지 힘이 대단해서 오직 하체의 힘 만으로 말 위에 앉아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비의 기마술 = 북방민족의 기마술 수준이라는 이야기다!

 

 


 

사실 유비의 기마술에 관해서는 기록을 관해서도 알 수 있다. 유비는 말 수는 적었으나 다정하면서도 위엄이 있었고 책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개와 말을 좋아했고 노래를 즐겼다고 한다. 또한 연의를 살펴보면 서원직이 "주인을 해칠 말이다" 라고 경고한 적로가 유비를 해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뿐인가? 유비는 적로를 타고 채모의 추격을 피하며 그 넒은 강을 뛰어 넘었다. 북방 기마민족의 기마술이 있지 않음에야 불가능한 일이다. 이로서 살펴볼때 유비의 기마술은 가히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추측된다. 장수가 무예를 부리면서 기마술이 부족하다면 말이 안되는 일이다. 일찍히 여포와 관우의 적토마나 서초패왕 항우의 명마 추에 대한 이야기를 볼때 전장의 무신과 기마술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것이었다. 이로 알 수 있는것은 유비의 기마술이 결코 항우나 여포, 관우에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보쌍검(步雙劍)과 같은 즉 요도(腰刀)이다. 모원의(茅元儀)가 말하기를, "단도와 수도(手刀: 칼날이 넓으면 칼끝의 등이 휘었고, 칼자루 끝에 작은 고리가 있어서 세속에서 이른바 박도[朴刀]라고 한다)와 대략 같다. 말 위에서 실용할 수 있다.『영귀지(靈鬼志)』에 이르기를, "하간왕 우(河間王 우: 진[晉]나라 종실)가 관중에서 이미 패하였으나 진안(陳案)이라는 급사가 있었다. 그는 항상 붉은 말을 타고 양손에 칼을 들고 있었는데, 그 길이가 모두 7척이었고, 말을 몰아 칼을 휘두르면 향하는 곳마다 적이 쓰러졌다"고 하였다.

 

또한 덧붙이기를

 

진안(陳案)이 마상에서 능히 7척 길이의 두 칼을 사용한 것은 이것이 비록 보통 사람을 넘는 용기이지만, 항구적으로 편리하게 사용될 기술은 아니다.

 

라 하였다. 이미 진안이라는 사람이 마상쌍검술을 자연히 구사했지만, 이것은 진안의 무예가 보통 사람들을 월등히 뛰어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 이제 두 가지는 알 수 있다.

 

유비는 극도의 경지에 오른 검술가 + 신의 경지에 오른 기마술사라는 것이다.

 


 

3. 손상향

 

유비와 손상향이 방아를 쿵덕쿵덕 찧는 물레방앗간에서 밀담을 나눈것도 아니고, 순전히 손유동맹에 관한 정략결혼에 불과했다. 그걸 떠나서 이제 막 꽃다운 나이가 되었는데 나이 오십도 넘은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고 생각을 해보자. 누구라도 기분이 안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성격이 xx 맞기로 유명했던 강동의 손상향은 놀랍게도 유비에게 순종적이다. 몇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첫번째. 유비의 절륜함(.....)이 이유가 될 수 있을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통용되는 말이지만 "평생 안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라고 한다. 꽃처녀가 맛을 들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이 절륜함이라는것도 보통 힘으론 되는 것이 아니다. 흔히 전륜한 남자들은 보통 말근육이 대단하다고 한다. 말근육은 잔근육을 뜻하는데,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근육이 아닌 잔근육도 발달했다는것은 유비가 평소에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그 가공할 전륜함으로 신앙심 깊은 수녀들도 무너뜨렸다던 카사노바도 나이 40에 고자가 되어 쓸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말 위에서도 행위를 즐긴 연산군(요즘으로 치민 카xx?) 같은 경우는 몸이 허함을 느껴 이름 높은 정력제를 닥치는대로 구해 먹었다고 한다. 유비가 이런걸 구할 형편도 아니었지만, 나중에 입촉 후엔 60에 가까운 나이로 유리 등을 새로이 보았다. 가히 경이적인 수준의 정력이라고 볼 수 있다.

 

두번 째로, 쉽게 상상이 가지 않지만 손상향이 맞고 살았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결혼전엔 기가 세다는 말을 들어도, 폭력적인 남편 때문에 결혼 후에 기가 꺾여서 사는 경우가 우리 주위엔 많다. 그런데 손상향이 쉽게 맞을 사람이 아니다.

 

일단 본인도 궁요희라고 불릴 정도로 상당한 무예를 지니고 있는데다 시녀들도 거의 뭐 남잔지 여잔지 구분이 안갈 괴력의 시녀들만 드글드글하다. 이걸 유비는 전부 제압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맞는다고 해도 기가 쉽게 꺾일까? 손상향은 어렸을때부때 강동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부친의 무예를 보았다. 우리나라에 사는 아무르 호랑이는 만주나 연해주 근처에서 살고, 강남지방에 사는 호랑이라면 모택동의 무자비한 학살로 멸종위기 종으로 지정된 남중국 호랑이를 말하는 것일테다.

 


 

남중국 호랑이의 모습. 몸길이 225∼265cm 몸무게 100∼175kg정도 나가는 맹수다.

 

부친 손견은 이 호랑이와 비견될 정도의 용사였다. 거기에 손상향의 오라버니 손책은 소패왕이라 불릴 정도의 전사였고, 황개 정보 주태 감녕 등등 손가의 맹장들에 손책이 원술 빵셔틀 노릇하고 있을때는 기령등등 원술 휘하의 맹장들도 본 여자다. 손상향이 왈가닥이 된것은 이런 무장들과 같이 지냈기에 그리 되었을텐데, 유비에게 버로우를 탄것은 유비가 그런 맹장들은 압도하는 무위를 지니고 있어서라는 이야기가 된다.

 

덤으로, 유비 앞에서 찍 소리도 못했던 손상향은 유비가 떠나자 발광을 한다. 조운과 장비가 있었지만 기껏에야 아두를 데려오는게 전부였다. 즉 손상향은 조운과 장비는 안 무서워도 유비는 무서워 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결론을 내보자.

 

유비는 검술의 끝을 본 쌍검술사 + 천고에 다시 없을 기마술사 + 사상 최고의 정력왕 + 손견 손책 기령 황개 조운 장비의 기(氣)를 능가하는 무위를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히 삼국지 최강의 남자라고 단언해도 될 것이다.

 

이걸 바탕으로 재해석을 해보자.

 

 

4. 관우와 장비가 유비를 따른것은 맞고 나서이다.

 

관운장이 얼마나 오만하던가? 기록에 따르면 미방이 배신하기전에도 계속 업신여겼다고 하고 황충같은 용장과 같이 비교되는것조차 불쾌해 할 정도였다고 한다. 장비는 또 어떤가? 능력 없는 자는 인간 취급도 하지 않던 사람이 아닌가? 인덕도 좋고 대의명분도 다 좋다지만,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일개 돗자리 장수에게 형님 소리를 한단 말인가. 중산정왕의 후손? 아버지가 아들을 속이고 형제들끼리도 난을 일으키는 시대에 그런것을 믿고?

 

만약 유비가 무예로 관장을 죄다 제압했다고 하면 간단하다. 관우는 수염이 뽑힐 정도로 뒈지게 쳐맞고 장비는 너무 맞은 나머지 눈이 고리눈이 되었다. 둘 다 칼밥을 먹고 사는 무인, 유비의 압도적인 강함에 굴복하고 거기에 꿀려 형님 동생 했다고 생각하면 이 수수께끼가 풀리게 된다.

 

탁현이 무슨 전설의 용사가 사는 곳도 아니고, 이미 자웅일대검과 장팔사모, 청룡언월도를 만든 신공이 사는데 지나가다 뽑은 병사가 관장, 이게 말이 되는가?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이름을 듣고 한판 뜨기 위해서 다른 지역에서 온 것이다. 그러다가 뒈지게 쳐맞고 아우가 되었다.

 

삼국지 연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유비가 차를 구하기 위해 서 있는것으로 시작하는게 일본버전이고 나관중 버전은 유비가 있자 관장이 알아서 찾아와서 갑자기 말을 건다. 그리고 느닷없이 도원결의를 맺는다. 그 중간 장면-관장이 얻어맞는 장면-이 생략되 있는 것이다.

 

5. 서서는 조조에게 속은것이 아니라 유비의 품에서 탈출한것이다.

 

멋 모르고 유비군에 들어갔다가 실상을 깨달은 서서는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어머니 핑계까지 하며 도망간것이다. 제 아무리 유비라도 부모가 부른다는데 어찌하겠는가?

서서가 쥐죽은듯이 박혀서 전장에 나오지 않은것도 설명이 된다. 혹시 함부러 어슬렁대다가 전장터에서 유비라도 만나면...

 

6. 제갈량은 유비에게 세 번을 쳐맞고 부하가 되었다.

 

이미 삼도에서도 나왔던 이야기로 알고 있다. 제갈량은 당대에 이름 높은 인물이었고 제갈근은 손가와 연이 닿아있다. 조조의 부하가 될 수도 있었고 제갈근의 추천빨로 손가에서 높은 위치에서 시작해볼수도 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손권이 제갈근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유비의 부하가 된다. 왜 일까.

 

위에서도 말했지만 기록에 따르면 유비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아마 제갈량이 거부한 그 순간 주먹이 먼저 나갔을 것이다. 제갈량은 첫번째는 어안이 벙벙했을테고, 두 번째 맞을때는 화가 났을테고, 세번째 맞을떄는 공포에 질렸을 것이다. 그래서 부하가 되었다.

 

그렇게 부하가 되었다고 쳐도 제갈량은 공포심 때문에 부하가 된것에 불과하니, 얼마든지 도망 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유비는 먹을떄도, 잘때도 제갈량과 함께 하고 손을 잡고 걸어다녔다. 도망갈 틈을 주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제갈량이 얼마나 공포에 질렸을지는 안봐도 뻔하다. 그 사이에 제갈량의 정신은 알아서 유비에게 복종하게 된 것이다.

 

유비가 죽을떄도 제갈량 더러 후사를 잇자고 하자 연의에 따르면 제갈량의 안색이 파래지며 기겁을 하면서 거절을 했다고 한다. 유비는 죽으면서도 제갈량을 넌지시 떠보면서 협박을 한것이고, 제갈량은 그 이후로 다른 마음을 품지않고 죽을때까지, 사마의가 건강을 걱정할정도로 무언가 쫒기듯이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으며 일만 하다가 죽었다. 그 정도로 유비의 마지막 말은 제갈량의 무의식속에 트라우마를 안길 정도로 공포스러웠던 것이다.

 

그 외 유비의 무공의 수위를 짐작해볼수 있는 부분이 몇가지 있다.

 

마초가 항복하고 유비를 만나자, 유비의 환영에 아직 어안이 벙번한 마초를 유비는 질질 끌고 가면서 환대한다.

 

여포가 극에 화살을 맞추는것으로 휴전을 제안하자, 기령은 무조건 불가능할것이라고 생각하나 유비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유비가 비빌 곳은 여포의 중재밖에 없는데 이렇게 말도안되는 방법에 별 이견을 보이지 않는것은, 유비가 여포의 무공의 수위를 완벽하게 꿰뚫어보고 있다는 뜻이다.

 

서량의 맹장들과 함께 생활하고, 조조군의 맹장들과도 겨룬 여포가 유비에겐 묘하게 살갑게 군다. 갈 곳이 없어서 일수도 있지만, 이미 원소 쪽에서도 깽판을 치다가 눈치보고 달아날 정도로 생각이 없는게 여포다. 무언가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증거로 서주 공격전에도 자기 아버지도 죽였으면서도 묘하게 하기 싫은데 억지로 사지에 나가는듯 떪떠름하게 생각하고 서주를 얻은 뒤에도 여포는 공포에 질리며 성주의 인장을 유비에게 넘겨주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유비의 일대기를 살펴보자

 

돗짜리 짜던 유비는 어떻게 노식의 문하에서 공부했나 ─

구타, 협박해서


돗짜리 짜던 유비는 어떻게 거리에서 관우, 장비를 주웠나 ─

소문 듣고 찾아가서 패서


돗짜리 짜던 유비가 어떻게 의용병을 500명이나 긁어모았나 ─

안때려오면 패니까


독우는 말 그대로 패버렸고


어떻게 공손찬에 빌붙어있었나 ─

학교다닐때 지근지근 밞아주던 빵셔틀이라


왜 도겸등은 서주를 못 넘겨주어서 안달이었나 ─

맞을까봐


왜 여포는 장비 뒷치기 후에도 서주 돌려준다고 언플을 갈겼나 ─

맞을까봐


조조는 왜 그렇게 멍청하게 유비를 놓아보냈나 ─

같이 있으면 맞을까봐


관우는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유비에게 돌아가려고 했나 ─

조조군에 계속 머물러있다 유비 눈에 걸리기라도 하면...


유표는 왜 순순히 유비를 받아드렸나 ─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나 


서서는 왜 사실여부도 확인 안하고 조조에게 얼른 가버렸나 ─

쳐맞고 사는게 서러워서


서서는 왜 기껏간 조조군에서 활약을 안하고 숨어지내나 ─

괜히 싸움터 가버렸다가 유비 보기라도 하면...


제갈량은 어떻게 유비를 따르게 되었나? ─

세 번 쳐맞고


제갈량은 왜 그렇게 충성스러웠나? ─

평생 쳐맞고 사니까 노예근성이 만들어져서...


제갈량은 어떻게 오나라의 중신들을 설득했나? ─

"조조와 싸우지 않으면, 황숙께서 친히 오나라로 오셔서...다음부터는 알아서 생각하시오."


항복 안한다고 팅기던 황충은 왜 유비가 개인적으로 만나자마자데꿀멍했나? ─

쳐맞아서


위연은 왜 유비에겐 충성하는데 제갈량에겐 툴툴 거리나? ─

같이 쳐맞던 놈이 자기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니까


성질 더런 손부인은 왜 유비에겐 쪽도 못 쓰다가 유비가 없자 달아나나? ─

매맞고 살던 마누라가 몰래 달아나는것과 똑같은 이치


유비는 왜 이릉대전에서 전부 불에 타죽는데 본인은 무사했나? ─

불길도 무서워서 유비는 피한다.

 

 

이상으로 알 수 있는것은 유비가 은거고수라는 것이다. 무공이 경지에 다다르고 은거하여 돗자리를 짜는등 소일을 보내던 와중에, 세상의 혼란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분연히 일어섰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짬짬이 야채를 기르는 모습은 은거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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